이제는 때가 된 것 같다. 먹을 만큼 먹었다. 얼마나 산다고 먹는 걸 참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걸 완수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제 정말 생존과 상관없는 식탐과는 인연을 끊고 싶다.
이번의 기폭제는 역시 치과였다. 치과를 다녀오면 항상 반성한다. 좀 덜 먹으면 치아를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치아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글이 있다. 예전에 읽은 로알드 달의 두꺼운 자서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으로 20대에 틀니를 한 로알드 달 이야기였다. 어린 시절부터 단 음식을 좋아했던 로알드 달은 치아 문제를 계속 앓다가 이를 몽땅 빼버리고 틀니를 해버린다. 그의 소설을 읽어봤다면 이런 기괴한 성격도 이해된다. 거기다 자신의 엄마, 누나들까지 이를 뽑아서 틀니를 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선택도 말년엔 후회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치아가 없으면 잇몸병과 충치에서 자유로운 건 사실이다. '먹고 싶은 거 실컷 먹고 나중에 어떻게든 살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이렇게 기호 식품과 이별의식을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한 인간이다.
일단 내 식탐에 대해 조금 풀어야겠다. 어릴 때부터 먹는 걸 좋아했다. 옥수수도 한 번에 서너 개씩 먹었고, 겨울에 귤 한 박스 사면 나 혼자 며칠 안 돼서 먹어치우고, 수박 반통도 그 자리에서 다 먹기도 했다. 거기다 과자는 오죽 좋아했던가? 과자를 먹다가 남겨서 나중에 먹는 사람이 진짜 부러웠다. 나는 일단 뜯으면 되도록 빨리 먹어 치우려는 성격까지 있어서 대용량 과자는 잘 안 산다. 특히 TV나 누가 먹는 걸 보면 그걸 꼭 먹어보고 궁금증을 해소해야 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걸로 풀기도 했다. 정말 목구멍까지 음식이 찼는데 먹을 걸 찾아서 밤늦도록 차를 타고 헤맨 적도 있다. 한동안은 맛집에 빠져 혼자라도 찾아가서 먹곤 했다.
그런 식탐도 나이가 들면서 줄기 시작했다. 소화기능이 예전만 못하니 줄긴 줄었다. 건강에도 신경 쓰니 단 것도 많이 줄여나갔다. 카페에 가도 캐모마일, 페퍼민트 류의 차를 마시고, 되도록이면 초콜릿, 단 과자는 먹지 않는 편이었다. 올해는 채식을 시작하면서 고기류도 확 줄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스트레스를 받으니 나의 식탐이 슬금슬금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먼저 과자류, 빵류부터 먹기 시작했다. 감자칩을 먹으면 아이스크림도 하나 곁들여줘야 했다. 음료수도 달짝지근한 커피음료를 사 먹었다. 냉동 떡볶이도 사서 해 먹고, 마트에 갈 때마다 조각 피자도 꼭 먹었다. 이렇게 야금야금 먹다 보니 속도 그득해졌다.
나 하나 먹는 걸 줄인다고 요식업계나 식품업계가 망하진 않는다. 내 소원은 음식에 대한 욕구가 안 생겼으면 좋겠다. 음식은 그저 생존의 수단 정도로 여겼으면 좋겠다. 대단히 맛있다고 소문난 집에 가서 먹어봐도 그때뿐이고, 먹고 싶은 걸 먹었다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그때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 대부분이 건강한 것도 아니고, 돈이 안 드는 것도 아니다. 그냥 안 먹고살면 어떨까 싶다. 이미 내 뱃속에는 다양한 음식에 대한 충분한 경험치들이 쌓여있다. 앞으로 남은 생에선 음식을 생각하는 시간에 다른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 입안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대체할 신나는 일이 뭔가 있을 텐데, 그걸 찾아야겠다.(조카는 먹는 게 재미없어서 잘 안 먹는다고 한다. 녀석이 정말 부럽다.)

음식 절제한 지 거의 이주일이 되어간다. 집에 있는 음식과 과일만 먹고 지낸다.(추석이 껴서 먹을 게 많았다. 앞으로는 두고 봐야겠다.) 먹는데 돈을 안 쓰니 지출이 줄어 좋다. 중간중간 간식을 먹지 않으니 끼니때가 되면 배고픔도 느껴지고 소화도 잘 되는 것 같다.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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