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다음 주에 연차를 냈다고 시간 되면 놀러 가자고 했다. 올해는 이 근방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약간 고민하다가 그러자고 했다. 2박 3일이라 강원도로 결정했다.
이 친구와 나는 휴대폰의 카메라 앱 하나로 몇 시간씩 놀곤 한다. 친구가 여행 컨셉으로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뮤비를 찍자고 춤 연습을 해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춤 튜토리얼 유튜브까지 링크 걸어줬다. 사실 나는 방탄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근데 이 친구가 올해 완전히 방탄에 꽂혀버린 것이다. 할 수 없이 그때부터 노래를 듣고 가끔 영상을 보기도 했다. 처음엔 '이게 지금 내가 할 건가?'싶었는데, 30분이 넘는 전곡의 안무를 두 번쯤 보고 나니 약간 자신감이 생기면서 아이돌 댄스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나중에 다른 댄스곡들도 커버 연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 강원도 여행 얘기에서 딴 길로 샜다.
친구가 업무 이동으로 바쁘다고 해서 이번엔 내가 일정을 짰다. 운전을 전담하는 친구가 젤 중요시 여기는 동선을 바탕으로 강릉에서 1박을 하고 평창으로 넘어와 1박을 하고 돌아오는 코스로 짰다.

점심쯤 도착할 첫 목적지는 지인이 소개해준 강릉 안목해변 근처의 '머구리 횟집'이었다. 2층에 올라가니 바다가 보이는 횟집이었다. 친구와 나란히 앉아서 바다를 보며 물회, 회덮밥을 나눠먹었다. 듣던 대로 회가 꽤 많이 들어있었고, 회 종류는 모르겠으나 고소하고 맛있는 회였다. 나는 물회를 처음 먹어봤는데 친구가 물회에 밥을 비벼먹어도 맛있다고 해서 회덮밥용으로 나온 밥의 반 그릇을 물회에 말아먹었다. 남은 반 그릇을 회덮밥에 비벼 먹었는데 그게 양이 딱 맞았다. 둘 다 맛있었는데 계절 탓인지 나는 회덮밥이 더 좋았다.

밥을 먹고 안목해변의 카페 거리로 갔다. 카페 거리라 뭔가 어마어마하게 멋진 카페들로 즐비할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한 카페 두 곳 중 루프탑이 괜찮은 '젠주'로 향했다. 카페가 호텔의 6층이었다. 올라가 보니 차를 주문하는 곳은 1층이었다. 잠시 6층과 루프탑을 둘러보고 내려와 차를 사 와야지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오버돼서 사진만 몇 컷 찍고 나왔다. 좀 미안했다.

우리가 시간에 민감했던 건 첫날의 차박 때문이었다. 미리 검색한 사근진, 순긋, 사천 해변을 둘러봤는데 우리가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위로 주문진항까지 올라갔는데 시간이 4시가 넘어갔다. 안 되겠다 싶어 차박지는 협소했지만 모래사장 바로 앞에 주차할 수 있는 순긋 해변으로 향했다. 잘 곳을 정하니 마음이 안정됐다. 우리가 4월 말에 첫 차박을 했을 때 고생했던 게 화장실이었는데 이 곳은 깨끗하고 가까워서 좋았다. 도착하자마자 우리에게 엄마 같은 친구가 빌려준 새 파라솔부터 바닷가에 설치했다. 파라솔 하나가 이렇게 분위기를 다르게 만들 줄 몰랐다. 테이블을 세팅하고 나니 저녁때가 됐다.


해변이 경포대와 가까워 배달 음식이 가능할 것 같았다. 검색을 통해 치킨과 맥주를 주문했다. 넓게 펼쳐진 바다를 배경으로 파도 소리를 음악 삼아 치맥을 먹었다. 먹고 나니 약간 쌀쌀해져 버너를 가져와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페퍼민트 차를 한 잔 마셨다. 노래도 흥얼거리고 춤도 추다 보니 또 출출해서 가져온 우동을 끓여먹었다. 마무리로 매실 엑기스 한 잔씩 마시고 주변 정리를 했다. 차에 잠자리를 준비한 뒤 동네 마실을 나갔다. 조금 나가보니 펜션이 많은 곳이었고 편의점도 있었다. 우동 국물을 마시며 친구가 소주가 생각난다고 했는데 우린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곳이라 포기를 했다. 조금 아쉬웠다. 돌아와 각자 오리털 파카에 모자를 뒤집어쓰고, 담요를 하나씩 덥었다. 면 마스크에 핫팩을 손에 쥐고 잠자리에 들었다. 준비가 안 됐던 첫 차박의 추위를 경험한 터라 기억에 이번엔 만반의 준비를 했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라 새벽에 눈이 떠진다. 5시경부터 깼는데 친구가 깰까 봐 계속 누워있다 6시쯤 일어났다. 바닷가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았다가 일어나 해변을 왔다갔다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차들이 몇 대 들어오더니 사람들이 바닷가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일정에 해맞이는 깜빡했는데 이 사람들 보니 생각이 났다. 구름 사이로 해가 조금씩 떠오를 때 친구를 깨웠다. 차 안에서 편안히 해맞이를 만끽했다. 그리고 둘이 누워서 더 쉬었다. 8시쯤에 일어나서 가져온 오트밀과 과일로 아침을 먹었다. 그 뒤 내 폰이 방전됐다. 바보같이 usb를 갖고 온다는 걸 콘센트에 연결하는 충전기를 갖고 와버렸다. 친구 폰도 곧 방전됐으나 차로 충전을 했다.

이 날 일정은 바닷가에서 커버 영상을 찍고 평창으로 가는 거였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춤추기엔 민망할 것 같아 조용한 순긋 해변에서 계속 놀기로 했다. 그리고 시작된 촬영. 친구는 감독처럼 이런저런 지시를 내렸고 나는 따라가지 못했다. 웃긴 건 나보고 동작의 속도가 느리다고 핀잔을 줬는데 집에 와서 찍어온 영상을 보니 친구도 만만치 않게 느렸다. 마음은 아이돌인데 몸은 중년이여. 나는 파라솔 아래서 노래방 앱으로 노래를 불렀다. 20대 때 좋아했던 신해철의 '정글 스토리' 앨범의 대여섯 곡과 자우림의 '뱀'을 불렀다. 바닷가에서 목청껏 부르니 속이 시원했다.

대충 촬영을 마치고, 전날 차박지를 찾다 지나친 테라로사에 가서 빵과 차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작년 이맘때쯤 이 친구와 강릉을 왔을 때 테라로사 본점을 갔었다. 나는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아 근처의 테라로사라도 가고 싶긴 했었다. 이 곳은 사천점인데 인테리어가 맘에 들었다. 2층의 탁 트인 공간에 자리를 잡았는데, 주변의 소나무들이 그림처럼 어우러져 멋있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 휴대폰이 약간 살아났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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