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성재의 텐'
지금은 안 듣고 있다. 약간 열기가 식은 상태다. 얼마 전까지 유튜브의 생녹방으로 지난 방송분을 다시 들으며 내용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너무 방대하고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약간 다운된 상태에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블로그에도 여러 번 거론된 적이 있지만, 친구가 불을 질러 듣기 시작한 라디오다. 정확히 전체 프로를 다 듣는 건 아니고 이말년, 이석우, 박문성 세 명이 나오는 것만 골라 팟캐스트나 유튜브로 다시 듣기 한다. 진정한 애청자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 라디오가 내게 끼친 영향이 커서 글을 남기고 싶다. 지금은 그만둔 이석우 에디터부터 시작한다. '남자들의 시선에서 바라본 남자들이 궁금해하는 순위 베스트 10'이란 프로를 진행한 이석우 에디터의 방송은 밋밋함에서 오는 편안함이 있었다. 순위를 소개하며 이들이 나누는 소소한 대화의 재미에 빠져든 결정적인 에피소드는 복권과 관련돼 내용이었던 것 같다. 오래돼서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꿈에 죽은 사람이 나왔을 때 취하는 행동을 얘기하다가 둘 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들의 아버지가 꿈에 나왔을 때 로또번호? 혹은 주식?을 알려달라고 해서 깨자마자 아버지가 알려준 걸 적었다는 얘기에서 그들의 행동이 너무 귀여웠다. 물론 그들도 그 얘기를 하고 난 뒤 '돌아가셨을 당시엔 매우 슬펐지만...'라며 숙연하게 수습했다. 여기엔 나의 공감도도 반영된다. 가끔 나도 돌아가선 아버지가 꿈에 나올 때 복권을 산 적이 있다.
또한 이석우 에디터는 매우 솔직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그 솔직함에서 오는 유머도 좋았다. 한 예로 여친에게 자신이 보던 19금 영상을 들켰을 때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이게 다 너를 위한 거야 ~"라고 당당하게 대답해서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대체로 상황에 대해 인정을 잘하고 팟수들이 하차하라는 압력에도 꿋꿋이 버티는 그의 의연함. 그리고 다른 게스트들에 의해 밀려나 몇 주를 쉬고 나와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끈기. 그런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다음으로 박문성 위원이다. 사실 이건 다른 두 사람 걸 이미 다 들어서 들을 게 없을 때 듣는다. 그러나 박문성 위원의 '비연애챔피언스리그'는 강도도 세고 교육적인 효과도 가장 높다. 외모에 대한 비하가 많이 나오는 편이라 비판하려면 문젯거리가 되겠지만, 청취자 스스로 자신이 놀림감이 된 에피소드를 적나라하게 써 보낸다. 진행자는 그걸 깐죽거리며 놀린다. 방송을 처음 들었을 땐,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불편하긴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들의 세계를 이해하게 됐다. 말로 놀리는 건 그저 놀림일 뿐이었다. 사연을 보낸 사람도 크게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살다보면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만나다. 그런면에서 이 프로를 듣고 나도 멧집을 조금 키울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나 또한 '비연애'인으로서 그들의 의견에 십분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근데 이걸 오래 듣다 보면 연애세포가 파괴되는지 외롭지가 않아진다. 나 같은 부류가 이렇게 많은데 굳이 연애는 왜 해? 이 점이 가장 큰 단점이다. 오죽하면 요즘엔 그렇게 놀려대던 배성재가 여러분도 연애를 하라고 말할 정도니... 젓가락이 두 개라 질투하는 내용부터 뭐든 두 개씩 붙어있기만 하면 죄다 트집을 잡는 게 꽤나 신선하다. 내가 가정 애정 하는 게스트 침착맨, 이말년. '말년이 편한 가불판단소' 청취자들이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연을 보내면 이말년이 답을 해주는 프론데 듣다 보면 그냥 이말년의 의식의 흐름으로 흘러간다. 외모나 말투 겉에서 흘러나오는 느긋함과 대책 없음. 그러나 의외로 처세술에도 능하다. 어떨 땐 가만히 듣다가 머리가 트일 때가 있다. 내가 사고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다. 그래서 나는 그를 '천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방송의 중심인 배성재. 어린 시절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란 배성재는 홀로 일찍이 세상을 깨쳤다.... 이렇게 쓰니깐 진짜 위인전 같네. '불편한 것이 편한 것이다' 이 말이 그냥 배성재를 대변하는 것 같다. 보통의 라디오 진행자들처럼 친근하지 않다. 청취자들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게 라디오 진행자로서 웃기지만 냉정한 말투에서 전해지는 진심이 더 듣기 좋다. 내 손에 잡히는 존재는 아니어도 가끔 마음이 심란할 때 이 라디오를 찾아들으면, 그의 담담한 목소리가 나를 차분하게 만든다. 자주 거론하는 '장군차 운전병'얘기가 있다. 군대에서 운전병이 좋은 보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걸 항상 자신 있게 꺼낸다. 그리고 자기가 얼마나 그 임무에 충실했나를 강조한다. 또한 자신은 '장군을 위해 운전한 게 아니라 나라를 위해 운전했다'는 너스레를 떠는 것이 어째 역설적으로 들릴 때가 있다. 언제나 냉철할 것 같은 배성재도 축구 얘기나 관심사에 대해선 아이처럼 떠들 땐 귀엽다. 또한 여행을 다녀오면 사람들의 선물을 다 챙길 정도로 섬세하다.
이 방송은 나처럼 예민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황당한 경험을 하면 이런저런 생각과 분석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는데, 이 방송을 접하다 보면 아주 단순하게 해석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된다. 어이없는 욕을 먹어도 '뭐 저래?' 정도로 이해하고 생각을 지운다.(늘 그런 건 아니고 가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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