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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일상속에서

지난 며칠간의 경험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을 수도, 즐거운 영상을  보며 웃을 수도 없게 됐다. 이 사태가 조속히 해결되기를 바란다.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가 계엄 얘기를 하는데 그때까진 별 생각을 안 했다. 너무 비현실적이라 와닿지도 않았다. 그러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영상들부터… 뭐야 국회에서 시민들이 군인들을 막으며 시간을 안 끌었다면? 군인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아 줘서 다행이야, 우리나라에 온갖 군이 다 있구나, 헌법이 이런 거야? 법공부에, 부결? 가결? 뭐 용어가 이리 헷깔려? 퇴장도 할 수 있어? 급기야 어린 학생들이 집회에 들고 나오는 응원봉 공부까지…

만약 계엄 해제가 되지 않았다면 당장 다음날부터 일상이 모두 무너질 뻔한 거 아닌가? 언론이 통제될 거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터넷도 막히고 외부 세계와 차단된 우리만의 섬에 빠질뻔한 거였다. 문득 옛날에 읽었던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 떠올랐다. 대략적인 기억으로 체제 비판 농담을 했다가 잡혀가 몇 년 동안 고생한 내용이었다. 그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섬뜩해졌다.

나도 한 때는 이런저런 책을 읽었고 영화도 봐왔다. 20년 넘게 정치 상황을 보면서 피로도가 쌓였다. 그러다가 최근엔 내 개인사에 몰입하다 보니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무신경하게 됐다. 그냥 좀 단순하게 살고 싶었다. 질서를 지키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세상이 잘 돌아가리란 믿음으로, 그런데 머리가 다시 복잡해졌다. 대통령이 주변에 자기 사람을 다 배치해 놓으니 사태를 해결하려고 해도 나서는 사람이 없다. 며칠이 지났다. ‘아… 이럴 때를 대비해 법을 만들어야 하는구나’ 란 생각까지 했다. 세계사를 보면 온갖 암투를 벌이면서 책략을 쓰고, 병법서들이며 삼국지 등등… 이런 거 안 읽고 단순하게 살려던 내게 한방 씨게 왔다. 그냥 이런 세상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구나. 겪어내고 변화시켜야 하는구나…

이틀간 대전의 퇴진 집회를 참여했다. 내가 제일 처음 놀란 건, 대다수가 여자였고 젊었다. 8년 전 박근혜 퇴진 시위에선 다양한 연령층에 특히 남자가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이번엔 여성들이 주도적이었다. 거기다 발표자들까지 전부 여학생들이나 여성들이었다. 시대가 변했구나 느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는 기분을 씻을 수가 없었다.

탄핵 선거 당일엔 좀 더 젊은 층의 남성들이 몇 보이긴 했지만 대다수는 40대 이상의 남성이었고, 여자들은 10대부터 윗 세대까지 다양했다. 얼마 전 동물 다큐에 빠진 적이 있다. 사자 영상이었는데,  수사자들은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순찰을 다니고, 암사자들이 사냥을 도맡아 했다. 수사자들이 돌아오면 사냥한 음식을 주곤 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암사자들과 나이 든 수사자들이 우르르 순찰을 다니며 영역을 보호하고 젊은 수사자들은 가만히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옆에 계신 여성분의 통화 소릴 들었다. “딸 어디야? 여의도야? 엄마는 여기 나왔어”  모녀가 각각 집회에 참여하셨구나. 나도 모를 오지랖에 말을 붙였다. “따님도 나간 건 가요?” 그렇다고, 딸은 서울에 살아서 여의도에 나갔다고 하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내 생각을 말했다. “이번 집회엔 여자들이 많아요” 그분이 “저도 그 생각을 했어요” 그러시면서 자기 딸은 나가고, 아들은 안 나갔다고 하셨다.

몇 년 전부터 남녀 청년들의 대치 상황에 대한 글을 읽긴 했지만, 후폭풍이 이리 클 줄 몰랐다. 좀 답답함이 밀려왔다. 어찌 됐던 이렇게 됐으면 같이 수습하고 도우면 좋을 텐데… 이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 직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여학생들이 추운 곳에서 집회할 동안 게임을 하든 친구랑 놀고 있든 뭔가를 하고 있을 사람들. 근데 이 사태가 해결이 안 되면 따뜻함도 친구랑 노는 일상들이 다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나만 아니면 되지, 누가 알아서 해주겠지‘ 나도 그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깐, 근데 그렇게 안 된다. 피할 곳이 마땅히 없다. 자신이 사는 곳을 스스로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 밖에 없다. 도와야 한다. 서로가, 이해관계에서 오는 문제가 있을지라도 지금은 도와서 같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경제도 그렇다. 최근에 나도 경제 공부를 하면서 시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재테크엔 솔직히 유리한 당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고 정책적으로 양쪽이 좀 더 섞여야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원화 가치의 하락이 심각하고 외환이 바닥나면 제2의 IMF도 가능하다. 이럴 때 최소한 자신의 돈이 걱정된다면 그런 사람들도 같이 집회에 참여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몇몇 남자 청년들, 경제가 걱정돼 참석하시는 분이 훨씬 많겠지만, 내 눈으로 본 상황에선 어린 여학생들로 가득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여자들의 체력이 약하다. 계속 번갈아가면서 나가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이 모여서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대안으로 SNS에라도 소신을 밝히면 좋겠다. 그것 또한 파급력이 있다.

이번 사태로 나도 반성을 많이 했다. 거짓말도 많고, 말도 잘 바꾸고, 이런 걸 싫어하는 사람들에겐 정치가 피로하긴 하다. 그렇다고 발을 빼면 안 되겠다. 이 지구상에 살아 있는 동안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신경하면 이렇게 내 의지와 다른 일이 벌어질 수 있구나.

‘계엄은 절대 안 된다.‘ 그게 가능했고, 또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한다. 제발 내가 누리는 평범한 일상들(맛집, 게임, OTT 서비스, 여행, SNS)이 통제당하고 한순간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같은 마음으로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갈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

깃발 하나 만들고 싶어서 - 정말 편한 마음으로 조카 사진 보며 웃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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