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된 것 같다.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한 게, 오늘에서야 그 원인을 조금 찾았다. 잘 살아보고 싶었다. 조금만 방심하면 '열심히, 잘'모드가 튀어나온다. 아침엔 '모닝 페이지'를 쓰고, 다이어리엔 일정을 적고, 밤이면 '감사일기'까지 작성하며 얼마간 보냈다. 근데 점차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것만 하면 내 인생이 확~ 달라지리라 예측하고 힘겹게 써가다 보니 정작 일은 하지 않고, 이게 주가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시작된 짜증과 감정 기복은 여러 군데로 튀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잘 지내던 친구와 틀어지고, 평소 엄마와 잘 맞지 않는 걸 크게 생각하고 이번 참에 관계를 개선해보려고 하고 싶은 말도 꾹꾹 참았다. 그리고 폭식과 인스턴트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맛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 것들을 뱃속에 집어넣자 늘 거부룩함이 뒤따랐다. 웃음이 전혀 나오지 않는 상태가 지속됐다. 극단적 예민함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일주일 전부터 외출을 시작했다. 거의 2만보씩 걸었다. 돌아다니다 들어오면 조금씩 나았다. 그러나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접한 채식 관련 서적을 읽은 게 4일 전 수요일이었다. 그때 이후로 주로 채식 식단에 간식은 과일로 대체해 나갔다. 식사 후 단 음식에 대한 욕구가 과일로 채워지며 음식 조절이 가능해졌다.

목요일 오전엔 마당을 걷다가 엄마에게 산에 가자고 말했다. 이상하게 그 날 오전부터 마음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며칠째 입이 예전보다 더 쓰고,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하는 걸 깨닫자 또 겁이 나기 시작했다. 건강염려증과 불안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어제 토요일 엄마가 다니는 한의원을 다녀왔다. 한의사가 약간 겁을 줬다. 엄마와 산을 타고 왔는데 불안이 가시지 않아 엄마와 자주 가는 동네 약국을 갔다. 약국 아저씨는 별거 아니라며 한약재로 된 신경안정제와 근육이완제를 줬다. 아저씨는 내 증세가 자신의 아내와 비슷하다고 오히려 우리에게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 얘기를 듣다 보니 나는 증세가 심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을 먹어선지 마음이 많이 안정됐다.
며칠째 엄마와 산을 타며 마음 내려놓기 연습을 했다. 그간 너무 욕심을 부렸다. 모든 면에 대해서, 이럴 때 특징은 세계관이 매우 협소해진다. 오직 내 안위만 걱정하게 된다. 오늘 아침엔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햇볕을 쬐며 '명상록'과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를 읽었다. (나에겐 약 같은 책이다)

"나는 원인과 소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어느 것도 무(無)에서 생성되지 않았듯이, 무로 소멸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모든 부분은 변화에 의해 우주의 어떤 부분으로 옮겨갈 것이고, 그 부분도 우주의 다른 부분으로 변할 것이며, 이런 과정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 의해 나도 생겨났고 나의 부모들도 생겨났으며, 이런 과정은 또 다른 무한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비록 우주가 정해진 주기에 따라 다스려진다 해도 이렇게 말하는 것을 가로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명상록
그림책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는 우주의 기원 빅뱅부터 시작된다. 이걸 조금 읽다 보면 내 존재의 미약함을 깨닫는다. 내가 하는 고민들이 '참 쓸모가 없다'에 이른다. 어떡하든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오늘도 엄마와 산을 타고 왔다.
그리고 모든 걸 멈추기로 했다. 모닝페이지, 일정 다이어리, 감사일기, 유튜브, 블로그까지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모닝 페이지는 일기장으로 쓰고, 감사일기는 진짜 감사할 때만 쓰고, 내가 하고 싶을 때 유튜브, 블로그를 하기로 했다. '멍 때리는 시간'을 늘려서 충분한 휴식기를 가지려고 한다. 동시성 때문인지 몰라도 도서관에서 <멍 때리기의 기적>이란 책을 빌려왔다.
3일 전부터 시작한 108배 운동을 꾸준히 해보려고 한다. 멈춰있는 시간에 대한 불안함과 나이가 들면서 변화하는 많은 것들. 내려놓아야 할 게 많다. 어쨌든 나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p.s.
적은 글을 읽다 보니 '내려놓기' 위해 또 뭔가를 열심히 한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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