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 오늘은 드디어 클라이밍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부터 꼭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선뜻 나서지 질 않았다. 전시 중 알게 된 토마토 기자가 클라이밍을 한다기에 물어본 장소가 있었다. 유성 쪽의 클라이밍장 두 곳 중 시설이 좋은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새로 지은 건물로 내부는 밝고 깨끗한 느낌이 들었다. 입구 쪽 카운터에 젊은 여직원이 있었다. 체험하러 왔다니깐 처음 배우면 강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예약제라 예약을 해야한다고 했다. 7시에 수업이 있는데 그때가 2시 30분경이었다. 애매한 시간이었다. 한가한 오후 시간을 찾은 건데 저녁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아 나왔다.
미리 알아둔 두 번째 곳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조금 더 굵어졌다. 충대 정문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좀 전에 갔던 곳보다 낡고 오래된 건물이었다. 클라이밍장 두 곳 다 꼭대기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아까와는 사뭇 다르게 약간 칙칙했다.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들어가 보니 어떤 아주머니가 바닥을 닦고 계셨다. "저기요..."말을 붙이자마자 내 가방을 보더니 비에 젖었다고 수건을 주셨다. 그리고 체험한다는 말에 탈의실에 물품을 보관하라고 하셨다. 나오니깐 신발 치수를 묻고, 장갑을 주시더니... 그러니깐 이 분이 여사장님이셨다.
아마도 부부가 운영하는 클라이밍장인 듯한데(남자 사장님은 나중에 들어오셨다.) 이 수더분한 50대의 경상도 여자분이 부인이신 듯하다. 갑자기 막대기를 벽에 고정된 손잡이 여기저기 막 갖다 대시더니 거기로 내 손발을 마구 따라 움직이라고 했다. '뭐야... 클라이밍이 이런 거였어?' 생각할 틈도 없이 가로로 파란색 막대기들을 따라갔다. 기억자로 꺾이는 부분에 한 번 쉬게 해 주고 계속 옆으로 갔다. 거기까지만 했는데 힘들었다. 잠시 쉬었다. 다시 거꾸로 가야 다른 쪽 근육도 쓴다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도 연습하라고 하시며, 본인은 바닥 수선을 하셨다. 근처에 나 외에 딱 한 명의 남학생이 있었다. 처음엔 직원인 줄 알았는데 클라이밍 하러 온 학생이었다. 친한 듯 학생에게 와서 좀 도와달라며 바닥에 테이핑을 하셨다. 난 그 옆에 누워서 쉬었다.
가로로 가는 것도 있는지 몰랐다. TV에서 보면 위로 올라가는 것만 봤거든, 근데 가로로 움직이는 게 기본이었고 진짜 힘들었다. 이어서 노란색 손잡이를 따라 위로 올라가는 건 오히려 쉬웠다. 그걸 하고 또 누워버렸다. 사장님은 또 이어서 바닥 수선을 하시며 말을 거셨다.
사장님 : 애기들은?
나 : 저 결혼 안 했어요. 나이 많은 시집 안 간 여자예요.
사장님 : 요즘은 마스크를 써서 아가씬지 아닌지 모르겠어.
이어서,
사장님 : 무슨 일 하는데 이 시간에 왔어요.
나 : 그림 그려요.
사장님 : 자유롭구나. 좋네.
나 : 근데 돈을 못 벌어요.
사장님 : 돈이 다가 아니지.
나 : 다들 말은 그렇게 해요.
이런 수다를 떨다 일어나서 한번 연습을 했다. 사장님이 다른 구역도 올라가 보라고 했다. 남학생한테 알려주라고 해서 그 학생이 손잡이 모양을 알려주며 그 모양만 잡고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그때 학생한테 동영상을 부탁해서 타고 올라가는 걸 하나 찍었다. 물론 바닥에 놓고 찍기도 했다.(이런 걸 왜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여기저기 쉬운 곳을 올라가 보고, 또 바닥에 누웠다. 팔이... 너무 아프다.
사장님이 남학생한테 고구마 먹자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남학생도 배가 고팠다면서 얘기를 하는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사장님이 내게도 권했다. 바로 부르는 곳으로 갔다. 고구마에 두유에 물을 마셨다. 오늘 처음 보는 두 사람과 TV를 보며 음식을 나눠 먹는 상황이 어쩐지 코미디 같았다. 지금 대학교 중간고사 기간이라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하셨다. 그 학생도 오전에 시험을 하나 보고 왔단다. 시험 보고 와서도 할 정도로 매력 있는 건가? 싶었다.
다시 초보자용 내 자리에서 벽을 타 봤지만 이젠 손바닥 마디 부분이 너무 아팠다. 손으로 꽉 쥐다 보니 그 부분이 빨개졌다. 사장님은 내내 웃음을 잃지 않으셨는데, 그런 나를 보며 처음에는 다 그렇다고 하셨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도저히 벽을 탈 수가 없었다. 또 누웠다. 그리고 주섬주섬 일어나 집에 간다고 했다. 사장님이 한번 배워보라고 권하셨는데 생각해보고 오겠다고 했다. 벽을 탄 시간은 채 30분도 안 되는 것 같다. 내 체력이 문제지.
바로 앞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나를 향해 웃으며 손까지 흔들어주는 사장님을 보면서, '아... 이러다 정들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팔이랑 손이 아파서 지금은 배울 생각이 없는데,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이 떠올라 또 가고 싶긴 하다.
클라이밍을 배우러 갔는데... 사람이 고팠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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